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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AMERICA/USA

산타모니카 해변의 파타고니아 | Los Angeles

 안녕, 낯선사람들. 사람들에게 나를 배낭여행자라 소개하고나면 일종의 편견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배낭여행자는 돈이 없을 것(?)이라는 것.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배낭여행자의 눈앞엔 이전까지 펼쳐지지 않았던 수많은 길들이 나타날 것이고, 한낱 인간인 내가 그 길에 사용될 재화를 측정할 길은 없다. 아마 그게 측정가능한 인간이었다면 나는 강남 유명 아파트에 돗자리 펴고 점봐주고 있었겠지 세계 밖으로 뛰쳐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 미래에 얼마가 필요할 지는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돈 없는 것? 맞다. 한국에선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한달에 150만원은 사용했다. 그런 내가 홈그라운드도 아닌 곳에서 플러스 없이 마이너스만 찍히는 통장을 바라보며 매일을 살아야 한다니. 나조차도 까마득하다. 근데 그렇다고 사는 재미를 버리기엔 자연의 창조물만큼이나 인간의 창조물들도 위대하다. 사실 소비의 마지막 순간에 내 뇌를 지배하는 생각은 '아 몰라~ 될대로 되겠지 뭐.' 이고 양심상 약간의 이성을 붙잡아보면 비행기 대신 12시간 버스를 타고, 우버 대신 대중교통을 타는 내가 있다. 배낭여행자는 단지 조금 더 가치판단이 듬뿍 담긴 소비를 할 뿐이다. 마이너스의 삶이 두렵긴 하니까.

 

 

 한국에서부터 생각한 미국. 그중에서도 엘에이에 가면 꼭 해야할 리스트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인앤아웃버거 꼭 먹어보기. 그랜드캐년 가보기.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기. 이들과 결을 같이 하는 리스트가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파타고니아 옷 사기' 였다. 근데 웬걸 LA에 파타고니아 매장이 단 두개뿐인 것이다. 소비의 고장 미국에서 이게 말이나 되나? 심지어 시티에서 가까운 매장은 산타모니카 해변의 파타고니아 뿐이었다. 정말 파타고니아는 그들의 철학에 맞게 판매를 하고 있었다. 많이 파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면 엘에이에 매장을 열댓개는 냈을 것이다. 그들의 철학조차 사랑하는 나는 어떻게든 이 매장을 가야했다. 

 

  미국 여행 가면 파타고니아 매장은 도시마다 찾아가라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나보다. 점원이 레트로 X는 구하기가 가장 힘든 옷이랬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옷을 원하는 소비자는 많다. 하지만 옷을 많이 찍어내는 일은 환경을 파괴한다. 파타고니아는 환경과 공존하길 원하기 때문에 그들이 설정한 양만을 생산한다. 파타고니아가 이렇게 핫해진 데에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구하기 힘들다.' 라는 사실 자체도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안그래도 구하기 힘든 옷인데 환경을 사랑하는 기업이라니! 내가 옷 한벌을 사는 행위 자체가 실은 내 재화를 사용해 환경을 파괴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나는 이 옷을 구매함으로 멸종위기의 세계의 것들을 1분이라도 더 지켜냈다고 말이다. 파타고니아를 입는 내 자신 자체가 굉장히 트렌디하고 깨어있는 것 같다는 착각. 맞다 알면서도 빠지는 정당화이다.

 

 

 무슨 옷 한벌 사는데 이렇게 사족이 길어? 이렇게 사족이 길기 때문에 사는 거다. 분명히 말했다. 배낭여행자는 단지 조금 더 가치판단이 듬뿍 담긴 소비를 할 뿐이라고. 결국 나는 레트로 X를 구하지 못했다. 남은 거라고 XXL 사이즈의 푸른 남성용 레트로 X 하나였다. 괜히 덩치 작은 나를 원망해보고 넓은 매장 안을 다섯바퀴쯤 돌고 터덜터덜 빈손으로 나왔다. 나 미국에서 파타고니아 옷 살 수 있을까?